2010년 6월 19일 토요일

영국의 아메리카식민지에 대한 태도와 정책의 변화

아메리카식민지에는 본국의 법률이 그대로 실시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영국은 17세기 이래 식민지에 중상주의정책을 실시하여 왔다. ... 그러나 적어도 7년전쟁이 끝난 1763년까지는 본국정부의 식민지에 대한 태도는 '건전한 방임(salutary neglect)'정책으로서, 중상주의적 통제나 종교 등에 관한 본국의 법률을 엄격하게 실시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

영국의 아메리카식민지에 대한 태도와 정책은 7년전쟁이 끝난 후 크게 변화하였다. 즉 종전의 '건전한 방임'정책을 포기하고 과세와 중상주의적 통제를 강력하게 실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1760년에 즉위한 조지 3세(1760~1820)가 先代와는 달리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에 직접 관여하려고 하였을 뿐 아니라, 그러한 태도를 식민지에게까지 적용하려 한 것이요, 둘째는 7년전쟁의 전쟁비용과, 신대륙에서 새로이 획득한 영토를 포함한 식민지 방위비 등을 식민지로부터 염출하려는 재정적 고려였다.

  • 식민지인의 알레가니산맥 서쪽지역에 대한 이주 금지 (1763)
  • 설탕법(Sugar Act, 1764): 종전의 당밀법(Molasses Act)을 개정, 타국 식민지로부터 수입하는 설탕에 대한 엄격한 과세
  • 인지법印紙法(Stamp Act, 1765): 신문, 책자, 법적 문서에서부터, 카드놀이용 카드, 학위증서까지 인지 첨부 강제 → 식민지 대표들이 인지법 회의(뉴욕)에서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헌정적 원칙 확인 → 영국 상품 불매운동 → 인지법 폐기
  • 선언법(Declaratory Act, 1766): 본국이 식민지를 통제할 법을 제정할 권리 보유함을 선언
  • 타운센트법(Townshend Act, 1767): 차茶, 종이, 도료, 유리, 납 등에 대한 과세 → 식민지의 강력한 반대로 茶에 대한 세금을 제외하고 폐지 → 보스턴 茶會(Boston Tea Party, 1773)

(서양사개론, pp.39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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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7일 목요일

18세기 폴란드의 분할

폴란드는 슬라브 계통의 민족이었으나,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슬라브족과는 달리 그리스정교가 아니라, 로마가톨릭교회를 받아들이고, 따라서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럽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

폴란드의 쇠퇴와 급기야는 亡國이라는 비운의 한 원인은 그 지리적 조건에 있었다. 하천이 많은 평원지대로서 폴란드는 외적을 방어할 자연의 장벽이나 장애물이 없이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폴란드의 國制에 있었다. 폴란드의 군주제는 선거제였고, 선거를 좌우한 귀족들은 그들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삭감할 정도로 강력한 군주를 선출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 회의의 구성원인 귀족은 저마다 절대적인 거부권(liberum veto)을 갖고 있어, 효율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없었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1772년 예카테리나女帝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대왕과 협의하고,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끌어들여 저마다 인접한 폴란드의 일부 영토를 나누어갖기로 했을 때 폴란드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영토의 4분의 1을 상실한 폴란드의 귀족들은 대책을 강구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제1차 폴란드 분할]. 1793년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제2차 분할에 서 원하던 영토를 다시 획득하고, 1795년에는 코슈추슈코(Thaddeus Kosciuzko)를 중심으로 한 폴란드 애국자들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영토가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 의하여 분할되어 폴란드는 멸망하였다. 그 후 ... 그들이 독립을 회복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였다.

(서양사개론, pp.357-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