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조선시대 관료의 녹봉과 사적 증여, 그리고 공물 비리

조선 정부가 관료에게 지급하는 녹봉은 고위 관직자의 경우에도 많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그것만으로는 양반관료의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 지방 수령들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사적 증여였다. 이 때문에 중앙관료들은 지방 수령에 대해서는 당색에 관계없이 그들의 부패행위를 모른 척했다. 또 수령의 입장에서도 현직 임기가 끝난 후에 다음 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승진은 고사하고 자리라도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중앙의 고위관료들과 사적인 유대를 돈독히 해야 했다. 그 유대의 물질적 표현이 바로 사적 증여물이었다. 이 모든 요소가 공물가 인상으로 귀결되었다.

(이정철, 「대동법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공공성 관념과 현실」, 『역사비평』 94호, 2011, pp.118-119)

한 10년 전었다면 위의 글에 동의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직자의 비리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적인 모순에서 기인한 바가 더 크다고 말이다. 하지만 2011년 현재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많은 녹봉이 주어졌다고 해서 공물 비리가 없었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지방 수령의 공물 비리를 감찰하고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공물 비리는 여전했을 거다. 곳간을 열어두고 도둑놈들의 살림살이를 논하는 건 허무하다. 2011년 현재 남의 돈 뺏어먹고 사는 놈들 봐라. 어디 그놈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런가. 인간이 도구적 이성의 동물인 한에서는, 그놈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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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9일 수요일

중세의 거지조합, 절름발이조합, 맹인조합, ...... 매춘부조합

... 직공조합만이 아니라 거지조합도 결성되었다.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거지는 긍정적인 신분이었다. 현대처럼 사람들이 꺼리는 부정적인 지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슈케 교수에 따르면 거지는 천민과 달리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았고, 전문적인 직업적 지식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트릭을 사용하여 동정을 끌어내려 했다. 보스가 묘사한 「거지의 다양한 트릭」을 보면, 거지업이 대단한 노력과 재능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서민의 끈질긴 생명력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중세 하층민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비해 빈민이란 생계를 꾸릴 자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그것은 일시적인 상태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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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신분이 계층적으로 명확히 상하의 틀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신분 속에서는 횡적인 연대를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대장장이·목수·구두장이·빵집 주인 등의 조합 외에도 경제사의 교과서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거지조합·절름발이조합·맹인조합·한센 병 환자조합·백치조합·매춘부조합 등이 만들어졌다. 파리의 거지조합에는 거지왕이 있었고, 쥬네브의 매춘부조합에는 여왕이 있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한길사, pp.121-122)

...

거지조합이라... 권익을 위해서라면, 게다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결성 가능할 것이다. 근데 백치조합에 이르러서는 좀 난감하다. 백치들이 조합을 결성한다고 해서 그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었을까. 또한 백치 노릇에 기술 같은 게 필요할까. 어쨌거나 재밌다.

그런데 조합이 결성되었다고 해서 부정적인 지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추론이 아닐까. 아무렴 거지 노릇을 좋아서 했을까. 직업으로 인정 받는 것과 긍정적인 신분은 별개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현대인의 편견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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