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특기할 사실은 15세기 이후에 조선 기술이 눈에 띄게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배의 크기가 당장 커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위 '대발견(The Great Discovery)' 시대 선박들의 특징은 오히려 크기가 작다는 데에 있었다. 원래 해외 탐험은 위험이 큰 사업이어서 처음부터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사용되는 선박 역시 소규모였다. 그러나 자본 부족으로 작은 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점 외에 오히려 작은 배가 유리했다는 점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낯선 해안에 상륙해야 하는 배들은 너무 크면 해안에 좌초할 우려가 있어서 오히려 불리했다. ... '대발견'은 소도시의 소수 사람들의 사업이며, 공장이라기보다는 장인들의 공방 수준에서 이루어진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다. ...
그러나 '발견'과 '탐험'의 시대가 지나가고 '정복'과 '교역'의 시대로 접어들자 상황이 바뀌었다. 낯선 바다와 낯선 대륙을 탐험하는 데에는 오히려 작은 배가 유리할지 몰라도 어느 정도 안정 단계에 이르면 큰 배를 이용한 상업이 유리하게 된다. ...
근대 초에 유럽의 배들이 규모가 커지고 디자인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배들은 실로 가소로운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배들은 오늘날 한강 유람선(약 280톤 급)만 한 배들이었다. 근대 초 유럽의 원양 항해는 비유하자면 한강 유람선을 타고 인천을 떠나 인도양과 희망봉을 거쳐 유럽까지 항해하고 돌아오는 행위에 해당한다. 유럽의 해양 탐사를 설명하면서 '진취적인 용기' 운운하는 것은 순전히 레토릭만은 아닌 것이다. ...
근대 초의 해양 항해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진 위험에 찬 사업이었다. ... 그러나 처음에 소자본을 가지고 시작한 '벤처 기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장되었다. 초기의 위험 요소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수익 가능성이 확인되자 지금까지 사업의 전망을 주시하던 대자본과 정부도 간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방 국가만이 아니라 중심 국가들도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선박도 커지고 항해의 전체 규모도 폭발적으로 커졌다. 여전히 위험성은 컸지만 그것을 내부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체제가 형성되어 갔다.
(대항해시대, pp.136-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