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3일 목요일

프랑스 혁명과 유대인 해방

보통 프랑스 혁명기의 유대인 해방은 프랑스 혁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이 프랑스 혁명에게 억압으로부터의 인간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791년 9월 27일에 프랑스 국민의회는 프랑스 내의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을 주기로 의결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법적 평등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혁명가들은 당연히 이를 혁명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쾌거로 환영했다. 많은 유대인들도 이것이 수 세기에 걸친 굴욕과 법적 차별, 주류 사회로부터의 배제를 끝내 주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이것은 인간 해방이라는 점에서 시대사적인 의미를 갖는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해방이 아니라 큰 희생을 요구하는 거래였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시민권을 부여받기 위해 유대인 공동체의 자율성을 허용하는, 과거에 프랑스 왕으로부터 받은 특권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민사적인 일에 대해 유대교 성직자인 랍비가 가진 관할권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니까 유대인이 프랑스인이 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서였다.

혁명가들이 유대인들에게 이런 요구를 한 것은 그들의 종교적 공동체를 제거함으로써 프랑스 문화에 쉽게 동화시키기 위해서였다. ... 그리하여 일부 유대인들이 개인적으로 프랑스 사회에 편입되는 대신 유대인의 종교 공동체는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

결국 혁명기의 공화국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분으로 유대인에게 형식적인 법적 평등을 주는 대신 그들의 공동체를 부인함으로써 그 종교생활의 파괴를 기도한 것이다. 동화를 하지 않는 한 그들이 진정한 프랑스 국민이 될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3공화정 하에서 창궐한 프랑스의 반유대주의는 혁명기 프랑스인의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태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 공공생활에서 이슬람교적 행위를 금지하려는 것이다.

(「한국에서 서양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 pp.51-53)

Posted via web from Historian's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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