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부가 관료에게 지급하는 녹봉은 고위 관직자의 경우에도 많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그것만으로는 양반관료의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 지방 수령들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사적 증여였다. 이 때문에 중앙관료들은 지방 수령에 대해서는 당색에 관계없이 그들의 부패행위를 모른 척했다. 또 수령의 입장에서도 현직 임기가 끝난 후에 다음 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승진은 고사하고 자리라도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중앙의 고위관료들과 사적인 유대를 돈독히 해야 했다. 그 유대의 물질적 표현이 바로 사적 증여물이었다. 이 모든 요소가 공물가 인상으로 귀결되었다.
(이정철, 「대동법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공공성 관념과 현실」, 『역사비평』 94호, 2011, pp.118-119)
한 10년 전었다면 위의 글에 동의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직자의 비리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적인 모순에서 기인한 바가 더 크다고 말이다. 하지만 2011년 현재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많은 녹봉이 주어졌다고 해서 공물 비리가 없었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지방 수령의 공물 비리를 감찰하고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공물 비리는 여전했을 거다. 곳간을 열어두고 도둑놈들의 살림살이를 논하는 건 허무하다. 2011년 현재 남의 돈 뺏어먹고 사는 놈들 봐라. 어디 그놈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런가. 인간이 도구적 이성의 동물인 한에서는, 그놈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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