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는 슬라브 계통의 민족이었으나,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슬라브족과는 달리 그리스정교가 아니라, 로마가톨릭교회를 받아들이고, 따라서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럽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
폴란드의 쇠퇴와 급기야는 亡國이라는 비운의 한 원인은 그 지리적 조건에 있었다. 하천이 많은 평원지대로서 폴란드는 외적을 방어할 자연의 장벽이나 장애물이 없이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폴란드의 國制에 있었다. 폴란드의 군주제는 선거제였고, 선거를 좌우한 귀족들은 그들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삭감할 정도로 강력한 군주를 선출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 회의의 구성원인 귀족은 저마다 절대적인 거부권(liberum veto)을 갖고 있어, 효율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없었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1772년 예카테리나女帝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대왕과 협의하고,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끌어들여 저마다 인접한 폴란드의 일부 영토를 나누어갖기로 했을 때 폴란드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영토의 4분의 1을 상실한 폴란드의 귀족들은 대책을 강구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제1차 폴란드 분할]. 1793년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제2차 분할에 서 원하던 영토를 다시 획득하고, 1795년에는 코슈추슈코(Thaddeus Kosciuzko)를 중심으로 한 폴란드 애국자들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영토가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 의하여 분할되어 폴란드는 멸망하였다. 그 후 ... 그들이 독립을 회복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였다.
(서양사개론, pp.35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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