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일본의 성씨와 부부 동성제

에도 시대에는 '묘지타이토(苗字帶刀)'라 해서 무사 계급만이 성씨를 쓰고 칼을 지닐 수 있었다. 성씨는 칼과 함께 세습적 신분의 특권이었다. 일반 평민은 세습적 성씨를 갖지 못했다. 무사 계급이 전체 인구의 6퍼센트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일본의 '전통'은 부부 동성제가 아니라 '성씨'는 없고 이름만 있는 '무씨제(無氏制)' 사회였다고도 볼 수 있다.

메이지 유신 후 신정부가 1870년에 '평민묘자허용령(平民苗字許容令, 苗字는 성姓을 뜻한다)'을 공포해 처음으로 일반 서민도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평민들은 성씨가 오히려 납세와 군역 등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사용에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메이지 정부는 1875년에 '묘자필칭령(苗字必稱令)'을 공포하여 유럽식 호적 제도를 도입하였고 이에 따라 일본인들은 모두 성씨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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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메이지 민법으로 부부 동성제가 실시되기까지 일본 사회는 기본적으로 부부 별성제였다. 메이지 민법은 에도 시대 무사 계급의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삼아 호주를 정점에 세우고 가족을 호주 밑에 수직적으로 종속시키는 '이에(家)' 제도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려 했다. 입적, 전적, 제적 등의 권한을 호주에게 부여하고 이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통솔권을 호주에게 일임한 것이다. 호주는 재산상의 권한을 지닌다. 또 가족 구성원의 혼인에도 호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천황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를 수직적으로 통합한 일본 사회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부부 동성제가 탄생했다.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pp.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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