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교황 이노센트 3세(Innocent III; 1198-1216)가 발진시킨 제4차 십자군은 십자군이란 이름조차 무색케 하는 결과로 끝났다. 1204년 이노센트는 군대를 모아 베네치아의 함대에 태우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베네치아인들은 성지의 회복보다는 그들 자신의 상업적 이익에 훨씬 더 관심이 컸다. ... 그들은 이윤이 많이 남는 콘스탄티노플과의 교역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완전히 독점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1204년의 십자군은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베네치아인들은 십자군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교황의 원래 계획에 따라 성지로 향하는 대신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게 하였다. ... 십자군의 공격으로 옛 비잔틴 제국은 완전히 분해되어 버렸다. 그에 대신하여 콘스탄티노플의 라틴 제국(Latin Empire of Constantinople)이 들어섰고, 플랑더즈伯 볼드윈(Baldwin)이 황제의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단지 수도와 아드리아노플, 그리고 그 두 도시 사이의 지역과 소아시아의 가까운 해안지대에 대해서만 직접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십자군 제후들은 각기 테살로니카(Thessalonica) 왕국, 아테네 공국, 아케아(Achaea) 공국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나라를 세워 그 지배자가 되었다. 이들 나라는 원칙상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봉토였으나, 실질상으로는 독립된 나라였다. ...
콘스탄티노플에 최후의 공격을 감행할 때까지 이노센트 3세는 십자군이 성지에 가지 않고 딴 짓을 하는 것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일이 막상 벌어지자 그는 라틴 제국의 설립을 하나님의 놀라우신 役事로 환영하였다. 그는 뒤늦게 정복 뒤의 야만스러운 약탈 행위를 전해 듣고 깜짝 놀랐으나, 곧 이미 이루어진 사실과 타협하였다. 어쨌든 라틴 기독교 세계가 또 하나의 영역을 차지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서양중세사, pp.26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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