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이유에서 중요성을 더해 간 것은 면직물이었다. 면직물은 아시아 내의 가장 중요한 공산품이었는데, 이것이 뒤늦게 유럽에 소개된 것이다. 순면 제품은 이전에 레반트 교역이나 포르투갈의 사업에서도 거의 없던 것이며, EIC(영국 동인도회사, East India Company)가 1623년에 처음 시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그런데 1660년대에 들어서자 면직물 판매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상승을 기록했다. ... 인도의 면직물은 기술과 사업 조직의 변화 없이도 더 많은 인력 투입으로 공급 증가가 가능했고, 다른 한편 유럽에서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당장은 이 직물을 자체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니 인도 직물 수입이 그토록 급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목면은 유럽인들의 "외피(外皮)를 홀랑 바꾸어 버린" 중요한 품목이었다. 그 이전에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모직물이 중요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마와 대마, 혹은 이런 것들을 혼합해서 짠 직물들을 사용했다. ... 처음 목면이 유럽에 들어오자 '충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대 열풍을 일으켰다. 인도에서 짠 캘리코는 값이 싼데다가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 처음에는 면직 옷을 입고 다니면 식탁보를 입고 다닌다는 놀림을 당했으나, 곧 사람들은 이 멋진 아시아 직물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소위 '캘리코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많은 양의 캘리코가 수입되자 모직물, 견직물, 특히 리넨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일자리를 빼앗길 위험에 빠진 직공들의 저항이 거세게 터져 나왔다. ... 각국에서 자국 직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조치들이 강구되었다. ... 그렇지만 대세를 법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역사의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이런 위기가 결국에는 산업혁명을 초래해서 영국의 면직물이 인도에까지 수출되고 급기야는 인도 면직물업이 심대한 타격을 입고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대항해시대, pp.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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