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비私奴婢는 특정 개인이 소유한 노비다. 사노비는 주인의 사유 재산으로 물건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 노비는 이름만 있었을 뿐 성姓이 없었으며, 국가에 대한 공역公役 의무도 지지 않았다.
사노비는 일반 양인이 경제적인 이유로 몸을 팔아 생겨나는 경우가 많았다. 불법으로 강제로 종을 삼아 사노비가 생기는 수도 많았다. 일단 노비가 되면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신분 세습과 관련해 통상 적용되는 원칙은 '일천즉천一賤則賤'이었다. ... 노비에 대한 소유권은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에 따라 어머니 소유주에 귀속하였는데, 어머니가 양인이면 아버지의 소유주에 귀속되었을 것이다.
주인이 노비에게 가하는 매질 따위의 가해 행위는 불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죄의 유무를 불문하고 주인이 죽이는 것은 불법이었다. ...
반면 사노비는 주인에 대해 절대 복종해야 했다. ... 주인의 범죄도 고발할 수 없었다. 예외적으로 반역 같은 중대한 범죄는 고발해야 했다. ...
공노비公奴婢는 국가 기관에 속한 노비다. 공노비는 전쟁 포로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반역‧적진 투항‧이적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관에서 당사자나 가족을 잡아들여 생겨났다. 귀족층 가운데 이런 이유로 공노비가 되는 수도 있었다.
공노비는 값이 정해지지도 않았고 매매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 공노비는 누구나 독자적인 가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재산을 소유하여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도 인정하였다. 이 점에서 공노비는 사노비에 비해 신분상 지위가 높았다고 할 수 있다. ...
사원노비寺院奴婢는 다양하게 생겨났다. 국가가 공노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개인이 소유한 사노비를 시납施納하는 수도 있었다. 때로는 사원이 국가의 양민을 노비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사원노비는 공노비도 아니고 사노비도 아닌 것으로 분류되었다. 사원노비가 사원에 대해 지는 부담은 공노비나 사노비보다 가벼웠다. ...
고려 시기에는 유기를 만들어 팔고, 도살업屠殺業에 종사하며, 광대(창우娼優) 일을 하는 특수한 층으로 양수척楊水尺이 있었다. 양수척이 후백제의 후손이라고 설명하는 자료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양수척은 여진족이나 거란족의 후손인 듯하며 고려 초부터 있었다.
양수척은 정처 없이 이동하였으며 관적貫籍도 없었다. 따라서 부역이 부과되지 않았다. 이는 고려 국가가 이들을 국민 외의 존재로 봤음을 뜻한다. 그러나 남에게 소유되어 팔리지 않았으며, 이 점에 노비와 뚜렷이 구별되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았던 이들은 적이 쳐들어왔을 때 향도 구실을 하기도 했고,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왜구로 가장해 피해를 입힌 경우도 있었다. 양수척은 뒷날 백정白丁(도살업자)의 효시가 되었다.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3, pp.18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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