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포에니 전쟁(B.C. 264~241)은 시칠리아섬의 쟁탈전이었으며, ... 로마는 또한 이탈리아를 통일할 때와는 달리 새로 획득한 시칠리아를 동맹자로 취급하지 않고, 이를 속주(Province)로 만들어(B.C. 227) 생산물의 1/10을 공납으로 징수하고, 이를 위하여 징세청부제도를 도입하였다. 앞으로의 제국조직의 기본적인 틀이 마련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시칠리아는 그 후 북부 아프리카나 이집트와 더불어 로마의 곡창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라티푼티움(latifundium)으로 알려진 로마의 대농장 경영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202)은 ......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이 ...... 침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 한니발은 로마의 연패가 이탈리아 내의 '동맹자'들의 이탈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하였으나 그러한 현상은 부분적인 것으로 그쳤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결속은 견고하였으며 이는 로마의 통치정책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였다. ...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Scipio, Africanus)는 한니발의 근거지인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평정하고(B.C. 206), 카르타고의 본거지를 직접 공격하였다. ...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146)은 카르타고가 해상무역에 종사하면서 그 국력이 다시 커지는 것을 본 로마가 이를 완전히 멸망시킨 전쟁이었다. ... 전 시민이 결사적으로 항전하였으나 카르타고는 완전히 파괴되고 포로는 노예로 팔렸으며, 카르타고의 과거의 영토는 아프리카라는 속주가 되었다.(서양사개론, pp.105-106)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