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문물제도를 유교적인 것으로 재정비해야 했고 유교정치를 담당할 많은 유신을 필요로 했다. 대명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하여도 학자적 관료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인재의 양성과 학문의 진흥은 조선이 대명사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유교국가로 발전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요건이었다. 조선 개국 초에는 많은 인재들이 개국에 동참하였으므로 인재난은 없었다. 그러나 태종 10년(1410)이 되면 개국 초의 인재가 대부분 사라지게 되어 인재의 양성과 학문의 진흥은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세종 2년(1420) 3월 집현전集賢殿은 그러한 국가적 요구에 부응하여 설치된 것이었으며, 그것은 세종대의 문화와 정치의 수준을 높여준 원동력이 되었다.
세종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뽑아 집현전을 채웠으며 그들로 하여금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학술적인 직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집현전관集賢殿官은 경연經筵, 서연書筵, 지제교知製敎, 사관史官, 시관試官, 고제연구古制硏究, 편찬사업 등 학술적인 직무를 수행하였고,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두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쟁쟁한 학자들이 양성되었고 이들에 의하여 유교적 의례 제도의 정리작업과 편찬사업이 전개되었다. 유교정치를 할 수 있는 기틀이 여기서 만들어졌고 세종대의 문화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조선왕조의 성립과 대외 관계 中, 한국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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