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0일 수요일

시황제와 분서갱유

이러한 법가적 통치정책은 더 나아가 역사상 악명 높은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일컬어지는 사상의 통일로 발전했다. 분서란 서적을 불태워버린 것을 말하며 갱유란 자신의 통치이념에 반대하는 학자를 땅 속에 묻어 죽인 것을 이른다. 학자 중에는 진의 획일적인 법치에 불만을 품고 옛 것을 찬미하며 시황제의 정치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B.C. 213년에 이사李斯의 건의에 따라 진의 역사서와 의약, 점복과 농업관계 이외의 서적을 몰수해 30일 내에 소각했다. 그리고 고서古書에 대해 논의하는 자는 사형, 옛 것을 찬미하고 진을 비방하는 자는 일족 전체를 죽인다는 금령을 내렸다. 이 분서령은 이미 상앙商鞅의 변법을 통해 진국 내에서 실시되던 것인데,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 목적은 민간 소장의 서적과 사학私學을 금지하고 그것을 관이 소장하며 관학으로 일원화하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분서령이 반포된 이후에도 수도 함양에는 여전히 유가의 경전이 소장되고 있었으며, 박사들에 의해 정리‧연구되고 있었다.

다음으로 갱유는 시황제의 신선술에의 동경이 그 계기가 되었다. 분서의 다음 해에 자신을 속인 방사方士 노생盧生에 대한 화풀이로 유학자를 포함한 460여 명의 학자들을 함양에서 파묻어 죽였는데, 이것은 학자와 학문에 대한 탄압책의 대표적인 사례였으며 후세에 시황제를 비난하는 근거가 되었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pp.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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