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2일 월요일

유럽의 중세 도시

그러나 로마 제국 후기 이후 도시 문화는 전반적으로 위축되었으며 곳에 따라서는 단절되었다. ... 중세 도시의 본격적인 성립과 발달은 상업의 부활 이후 상업의 발달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중세 도시들은 대부분 ... 원격지 상업의 중심지와 국지적 상업의 교통 요지에 위치해 있었다. ...

그러나 봉건사회의 생산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중세 도시는 일정한 크기 이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 주민 수가 10만 명이 넘는 도시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주 인구가 1만 명 이상이 되면 대도시로 취급되었다. ... 인구가 2,000~1만 명인 도시는 중도시에 속했고, 500~2000 명인 도시는 소도시로 분류되었다. ... 중세 도시들 가운데 90~95%가 소도시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중세 사회에서 도시는 광대한 농촌 사회 속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작은 섬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봉건적인 농촌 사회로 둘러싸여 있는 중세 도시는 봉건적 생산관계에 기생하는 한편, 교환경제와 수공업의 거점으로서 봉건적 생산관계를 해소시키는 작용을 했다. ... (중세 도시의 독특성은) 우선 중세 도시는 공간적으로 성곽도시였다. ... 성탑과 성문이 있는 성곽은 도시가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성곽 밖의 봉건적 농촌 사회의 지배 원리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 법률이 지배하는 예외적이고 특수한 영역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둘째, 중세 도시는 토지 소유와 농업에 경제적 기초를 두었던 고대 도시와는 달리, 농촌과 사회적 분업 관계에 있는 상공업 도시였다. ... 도시는 시장을 통해 주변 농촌의 경제를 장악하고 지역 경제생활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

셋째, 도시의 주민은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되었다. 도시민은 자유인이고 도시는 개인적 자유와 능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지위 상승의 길이 열려있는 역동적 사회라는 사실이 ... 농노들을 도시로 유인하는 주요인이었다. ...

넷째, 중세 도시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서약 공동체였다. ... 중세 도시에서 시민이란 곧 서약자였다. ... 이른바 도시 영주라고 하는 지배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조합을 결성해서 공동체를 이루는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11세기부터 상인들의 주도 아래 서약 공동체가 성장했다. ...

다섯째, 중세 도시는 영주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독자적인 도시법에 기초한 자치 도시였다. ... 도시 영주의 이런 봉건적 지배 아래서는 도시민의 자유로운 직업 활동과 재산권 행사가 보장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시민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정치권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 확보 방법으로 도시민들은 화폐를 필요로 하는 도시 영주에게 금전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영주의 이런 권리들을 매수했다. 매수할 수 없는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영주와의 유혈 투쟁을 통하여 도시의 자치권을 획득했다. ...

마지막으로 중세 도시의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도시 안의 길드 조직이다. ... 대체로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상인 길드가 먼저 결성되고 그로부터 별도의 수공업자 길드가 생겨나서 직종별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 (길드는) 상호부조와 친목을 목표로 하여 생겨난 공제조합적‧친목적 성격의 단체였다. ... 조합원 사이에 경쟁을 배제하고 이윤 획득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상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강력히 단속하는 규제 단체적 성격을 띠게 했다. ...

(서양사강의, pp.175-181)

Posted via web from Historian's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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