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회를 규정하는 원리는 골품제였다. 이에 따르면 골품에 따라 정치적‧사회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에 차등이 있었다. ...... 결국 정부의 중요 관부와 장관(令)이나 장군과 같은 군 지휘관은 진골만이 맡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골품제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왕경인(王京人)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평민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골품제에 편입된 사람들의 지위는 지방의 유력자보다 우월하였다. 물론 지방 지배를 위해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관등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왕경인에게 수여되는 경위(京位)와는 별도의 외위(外位)를 주었다. 7세기에 들어서는 경위가 수여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관리가 된 예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방 유력자들은 골품을 지니지 못하였고 다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을 뿐이다.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pp.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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