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武二十五年七月十六日乙未,
都評議使司及大小臣僚合辭勸進曰;
홍무 25년(1392) 7월 16일 을미일에
도평의사사와 대소신료들이 함께 의논하여 왕위에 오르기를 권하기를
王氏自恭愍王無嗣薨逝, 辛禑乘間竊位,
有罪辭退, 子昌襲位, 國祚再絶矣.
왕씨는 공민왕이 아들 없이 죽은 뒤 신우가 틈을 타서 왕의 자리를 가로챘고
그가 죄를 짓고 물러난 뒤 그의 아들 창이 이어받음으로써 국운이 다시 끊어졌습니다.
幸賴將帥之力, 以定昌府院君權署國事,
而乃昏迷不法, 衆叛親離,
다행히 장수들의 힘으로 정창부원군으로 하여금 임시로 나랏일을 보게 하였으나
곧 사리에 어둡고 법도를 지키지 않아 인심이 돌아서고 친척들까지 멀어지니
不能保有宗社所謂天之所廢,
誰能興之者也.
종묘와 사직을 보전할 수 없었으니 이는 하늘이 버리는 것을
그 누구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社稷必歸於有德 大位不可以久虛.
以功以德, 中外歸心, 宜正位號 以定民志.
사직(나라)은 반드시 덕있는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이고 왕의 자리는 오래 비워둘 수 없습니다.
공과 덕으로서 중앙과 지방의 인심이 모이는 분으로서 왕의 자리와 칭호를 바로잡아서 민심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予以涼德, 惟不克負荷是懼, 讓至再三,
僉曰: "人心如此, 天意可知. 衆不可拒, 天不可違."
執之彌固, 予俯循輿情, 勉卽王位.
나는 덕이 적은 사람이므로 이 책임을 능히 짊어질 수 없을까 근심하여 두세 번 사양하였으나,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백성의 마음이 이와 같으니 하늘의 뜻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요청도 거절할 수가 없으며 하늘의 뜻도 거스릴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이를 고집하기를 더욱 굳게 하므로 나는 여러 사람의 의사에 따라 마지못하여 왕위에 올랐다.
國號仍舊爲高麗;
儀章法制, 一依前朝故事.
나라 이름은 이전대로 고려라고 하고
의식과 제도도 한결같이 전 왕조의 전례에 의거할 것이다.
(조선 태조 즉위 교서 中, 태조 원년(1392) 7월 28일 정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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