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은 전쟁의 최종 결정권자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시아‧북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고, 동유럽에 집중해 있었다. 1949년 말 이래 아시아에서는 스탈린이 모택동의 동의를 얻어 정책을 결정한다는 소련-중국간 권위의 이양‧서열화가 이뤄졌다. 때문에 1949년 3월과 1950년 4월 김일성‧박헌영의 모스크바 방문시 스탈린의 전쟁 결정은 미국의 전쟁 불개입에 대한 보증, 북한군의 병력‧화력 우위 보증, 모택동의 원조 보증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된 뒤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스탈린은 전쟁에 소련이 개입한 것을 위장하는 데 주력했고, 군사 고문단의 38선 이남 월경조차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 그렇지만 소련은 개전 초기 북한군 편제‧무장‧훈련은 물론 작전계획 수립에 이르기까지 북한국의 본질적 근원이었다.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下,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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