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은 어찌 보면 그리스 세계와 오리엔트 세계의 대결의 연장이라는 흥미로운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카르타고가 해상 교역 활동 및 알파벳의 발명으로 유명한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 8~6세기에 지중해 서부 지역에 세운 식민지들의 맹주 격이었다면--그래서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가리켜 포에니(Poeni), 즉 페니키아인들이라고 불렀다--, 로마는 직‧간접적으로 그리스적 문화와 제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해 온, 말하자면 그리스적 색체가 농후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대결(특히 3세기 말의 한니발 전쟁)에서의 승리로 로마는 갑자기 지중해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거의 필연적으로 동지중해의 헬레니즘 세계 강대국들과 일련의 긴장과 갈등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 즉 로마는 정치‧문화적으로 선진적인 헬레니즘 국가들에 대해 그동안 취해온 방어적 제국주의 내지 패권주의의 방침을 버리고, 보다 직접적인 지배로 전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마의 지배를 직접적으로 관철시킨다는 것은 바로 그 국가들의 속령화를 의미했으며, 그 과정은 기원전 30년 로마가 악티움(Actium) 해전에서 마지막 남은 헬레니즘 세계의 강국 이집트를 속주로 편입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서양사강의, pp.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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