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0일 수요일

기독교의 공인

"기독교인을 비롯한 모든 인민에 대하여, 누구든 마음대로 어떤 종교라도 선택하여 따를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콘스탄티누스, 313년)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공인될 당시의 기독교는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박해를 피해 지하에 숨어사는 몇몇 사람들이 믿던 종교가 아니라 전 로마 인구의 10% 이상을 신자로 거느린 종교로 성장해 있었다. 기독교 교회는 주교를 정점으로 사제 및 부제로 이루어진 계서제적 조직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주교는 성직자와 주민의 동의를 받아 선출된 후 이웃 교구 주교의 축성을 받아 주교 자리에 올랐는데, 일단 주교가 되면 죽어 은퇴할 때까지 로마의 행정구역인 도서의 거의 일치하는 그의 교구 내에서 절대 군주와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는 사제의 서품이나 세례 혹은 파문과 같은 종교적인 권한뿐 아니라 교구의 재정권 등 세속적인 권한까지도 행사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단순히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보답으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교회가 가진 현실적 능력과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

... 기독교 사제 집단은 제국의 통치 기구 및 관료 조직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거나 축소되고 있을 때 비약적으로 팽창하였다. 따라서 4세기 말 이후 제국이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다시금 혼란고 위기에 빠지면서 통치 조직이 붕괴되고 서유럽에 게르만족 왕국이 들어서게 되었을 때, 기독교 교회와 주교가 로마인들의 대변자요 로마 문명의 수호자가 될 수 있었다.

(서양사강의, pp.1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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