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상경의 작부체계와 함께 『농사직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벼농사에 대한 강조이다. 그 경작법은 세 가지였다. 묘판에 씨앗을 뿌리고 유묘를 잘 키운 다음 나중에 본답에 옮겨 심는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이앙법(移秧法)은 그 중에 세 번째로 서술되어 있다. 첫 번째는 물이 흥건한 논에 처음부터 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수경직파법이고, 두 번째는 밭작물을 키우는 것처럼 물이 없는 논에 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건경직파법이었다. 이 중에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된 재배법은 수경직파법으로 오래전부터 해 오던 방식이며, 15세기 당시에도 가장 일반적인 벼 재배법이었다. 건경직파법은 물 부족으로 수경직파법을 할 수 없을 때 오랫동안 터득해 온 밭작물 재배법의 노하우를 이용해 벼를 재배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이앙법은 1년 중 항상 물이 차여 있을 정도로 물이 풍부한 매우 제한적인 논에서만 가능한 예외적인 방식으로 기술수준도 낮았다.
혹자는 『농사직설』의 편찬의 가장 큰 목적이 벼농사 기술의 안정적 확립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 수경직파법을 하다가 제때에 비가 오지 않아 건경직파법을 하면 거기에 드는 제초작업의 노동력은 비교할 수 없이 많이 필요했다. ... 그러나 이앙법은 인수와 배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여건 아래에서만 가능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농사직설』에서는 농민들에게 되도록이면 하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따라서 15세기 당시에 이앙법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 시대가 흐를수록 매우 고도의 경작법이 개발되었다. ... 나아가 메마른 논에서 이앙을 할 수 있는 경작법까지 개발되었다. 18세기의 대표적 농서 『산림경제』에 제시되어 있는 '건앙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건경직파식 벼 재배법이나, 건앙법과 같은 독특한 이앙법은 그야말로 수리시설이 열악한 여건에서 조선의 농민들이 개발해 낸 고도의 벼 재배법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벼농사는 전기의 직파법에서 후기의 이앙법으로의 전환이 가장 큰 역사적 흐름으로 이해된다. 이앙법은 그 자체로 벼의 높은 수확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한 해에 벼와 보리를 번갈아 심음으로써 1년 2모작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 높은 기술이었다. 이앙법은 그만큼 생산력의 획기적인 증가를 상징하는 것이다. ...
(한국사특강, pp.29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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