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8일 목요일

비스마르크와 국가사회주의

18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수반하여 사회주의 세력이 신장되었다. 사회주의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비스마르크는 1875년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사회민주당'이 결성되자, 좌파 급진주의자들의 두 차례 황제 암살 미수 사건을 기화로 1878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보수파의 승리를 확보한 뒤, 사회민주당을 불법 단체로 선언하고 노동조합, 소비자 협동조합, 각종 교육단체를 탄압했다(그러나 사회주의자의 하원 진출은 허용했다). 융커는 반사회주의적이었고, 선거에서 패배한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주의 탄압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체제 유지를 위해 일방적인 탄압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표를 확보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이완시키기 위해 그는 1883년 의료보험, 1884년 상해보험, 1889년 퇴직 보험 같은, 당시에 '국가사회주의'로 불린 온정주의적이고 '강제적인' 사회입법을 통하여 보수주의적 질서를 강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1870년대 이후 불황기에 노동자들은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사회민주당을 지지했다. 사회민주주의의 급속한 성장은 비스마르크 체제의 쇠퇴의 한 징후였다.

(서양사강의, pp.429-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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