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6일 화요일

송의 문신관료제와 취약한 군사력

송대는 경제‧문화면에서 이전 시대에 뒤지지 않는 역대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지만 내륙아시아의 거린족, 여진족, 몽골족 및 티베트족 부족민들의 중국 내부로의 침입과 정복 역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왜 송조는 이들과의 무력대결에서 계속 취약점을 보였는가? 그 원인 중 하나는 무거운 국방비의 부담을 진 관료제도와 군사제도가 성립된 데 있었다. 게다가 문치주의적 문신관료제가 성립되면서 쿠데타의 가능성을 가진 무인 세력을 철저히 견제했고 과거제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 이러한 정책과 분위기는 송조를 군사적으로 허약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고 결국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적에 대한 정보에 어두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진‧한과 수‧당 왕조는 교역과 사절을 통해 끊임없이 내륙아시아의 권력구조에 개입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열된 부족 내에서 자신의 동맹자를 구하고, 강한 부족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수법, 즉 이이제이以夷制夷메 매우 익숙했다. 따라서 북송과 남송이 보인 외교적인 어리석음은 내륙아시아의 민족들과 접촉을 갖지 못한 채, 정복왕조의 등장이라는 내륙아시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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