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중엽 이후부터 청 말까지 국가의 지배를 보조하는 중간적인 지배계층으로 신사층紳士層이 있었다. 이들은 휴직 또는 퇴직한 관료로서, 관직의 경력이 있든지 아직 관리가 되지는 못했으나 과거제, 학교제 등을 통해 일정한 학위를 소지한 생원生員, 거인擧人(3년에 한 차례 치르는 향시 합격자), 공생貢生, 감생監生(최고학부인 국자감의 학생) 등으로 관위를 지망하는 사람들이었다.
... 그러나 명 중기 이후 이갑제 질서가 해체되어 가면서 관직에 나가지 못한 학위소지자들이 관직경력자들과 더불어 향촌의 질서유지에 지도적 역할을 하면서 이들은 국가나 평민으로부터 크게 보아 신사층이라는 하나의 계층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
... 신사는 향촌의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통해 공익과 사익을 추구했으며 향촌을 교화하고 여론을 지배했다. ... 이는 또한 신사의 영향력을 통해 이갑제 질서의 공백부분을 보충하려던 국가와 향촌사회의 요청에 부응해 신사가 공적인 역할을 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사는 ... 특권을 이용하거나 때로는 남용해 ... 사익을 우선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신사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면 할수록 그들의 특권이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농민의 부담으로 전가되었고 한편으로 향촌사회의 분해를 조장하는 부정적 기능도 했다. ...
명 말과 청 초의 동란기에 자위를 위해 무장했던 신사는 강력해 보이는 청조권력이 자신들의 사회적 특권을 그대로 보장해 주리라는 전망이 보이자 청조에 투항해 향촌사회에서 국가권력을 보좌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 국가권력으로서는 때로 신사를 탄압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이들을 체제 내로 포섭하지 않고서는 원만한 통치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신사층은 왕조의 존망을 초월해 사회의 지배적인 계층으로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했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pp.26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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